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Of Frame

맨 처음으로 돌아가서,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볼까 해요.

학교 선배가 제 사진을 찍어줬어요. 그런데 기가 막히게 잘 나와서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.
나한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, 한동안 틈만 나면 들여다봤어요.
그때 제가 한 생각은,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였어요.

다소 희한한 일이죠. 보통 사진이 잘 나오면 기분은 좋아도 나도 남들을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하니까요.

그래서 광화문 아펠가모 연회장에서 알바하며(진짜임) 돈을 모았고,
전재산을 털어 작은 카메라를 사서 친구들부터 모르는 사람들까지 사진을 찍어주고,
인생샷이라며 좋아하는 모습에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과 감각들을 느꼈어요.

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그 선배와 함께 일을 하고 있더군요…
어느덧 올해로 사진을 찍은지 13년 차가 되었네요.
처음 선배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혔던 날의 기억은 이제는 사실 잘 나진 않지만,
그날 기록된 '어린 시절의 나'는 휘발되지 않고 영구히 남아있어요.
그 선배가 제 사진을 찍어줬다는 기억과, 그날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도요.

저는 사진의 본질은 시간과 기억이라고 생각해요.
결혼식도 그래요. 결혼식은 하루지만, 결혼하게 되는 관계는 하루 만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.
두 사람이 같이 보낸 시간, 함께 했던 공간, 둘만 아는 농담, 여행 가서 했던 고생, 이 모든 기억들이 천천히 쌓여서 생겨난,
서로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하루예요.
가족들, 친구들, 지인들과 쌓아온 시간과 기억들도 마찬가지구요.
그런데 카메라만 있다면, 프레임 안에 그 모든 기억들을 담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서 가질 수 있어요.
이게 얼마나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지고 근사한 일인지!

사랑이 보이는 순간들이 좋아요.
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좋아요.
놓치기 쉬운 작은 순간들이 좋아요.
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간들이 좋아요.
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영원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.

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, 정말이지 분에 넘치는 행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.
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. 제 천직이에요! 저는 이 일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해요.
물론 가장 중요한 건 예쁘게 찍어서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거예요. 역시 그게 제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니까요.

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긴 글을 시간 내서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.
찾아와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께 꼭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.

오브프레임 송채림